“현명한 스승은 제자들에게 자기 지혜의 집으로 들어 오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제자들 스스로 그들
마음의 문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한다”
– 칼릴지브란 –
스승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승을 보는 눈이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 특히 인생의 스승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기 마련이다. 이 것을 롤모델이라고 한다. 롤모델(Role Model)이란 자신이 가고자 하는 역할이나 마땅히 해야 할 본보기를 말한다. 인생의 나침판이 되어주셨던 스승을 롤모델로 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롤모델을 설정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닮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지금 제가 가고 있는 길이 잘 가고 있는 건가요?” 직장의 후배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다. 누구나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놓은 지위를 원한다. 그렇게 할려면 자신에 맞는 롤모델을 찾아야 한다. 자신에게 맞는 롤모델을 찾지 않으면 자신하고 맞지 않는 스승을 만날 수도 있다. 자신에게 맞는 롤모델을 찾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례 한가지를 소개해 본다.
미국에 ‘수잔 앤더슨’ 이라는 여인이 어느 날 눈 수술을 받다 그만 실명하고 말았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의 직장 출퇴근을 도와 주었다. 얼마 후 남편이 말했다. “여보, 계속 이럴 수 없으니 내일부터는 혼자 출퇴근해요.” 그 말에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낀 그녀는 이를 악물고 혼자 출퇴근을 했다. 여러 번 넘어지면서 서러운 눈물도 흘렸지만 점차 출퇴근이 익숙해 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버스를 탔을 때 운전기사가 무심코 말했다. “부인은 좋겠어요. 좋은 남편을 두셔서…… 매일 한결같이 부인을 돌봐주시네요.” 알고 보니 남편은 매일 아내가 버스를 타면 같이 타 뒷자리에 앉으며 아내의 출퇴근을 말없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가 살면서 때로는 넘어지고, 서러운 눈물을 흘리고, 상처와 고독도 있지만, 그때마다 나의 등 뒤에선 누군가가 반드시 있었다. 어릴 때에는 부모가 될 수 있겠고, 성인이 된 다음은 배우자나 가족이 그리고 나이 먹어서는 자식이 될 수 있겠다. 이렇듯 우리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즉,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나에게 꼭 필요한 인생의 스승을 제대로 못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스승다운 스승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스승들은 내세우기게 급급하고 올바른 덕성을 지닌 이가 몇 안 된다. 스승이라고 권위적이고 아래 사람을 누르려는 세태에 스승은 없다. 요즘 스승은 지식만을 전달하는 기계적인 사고를 지닌 분들이 많이 있다. 스승이 아니라 지식을 전달해 주는 사람으로 전략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둘째, 스승의 열정만큼이나 제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지난 경험을 토대로 글을 쓴 김수림 저자의 <살면서 포기해야 할 것은 없다> 에서 스승 린다의 열정만 있고, 제자의 노력이 없었다거나 스승의 열정이 없고 제자의 노력만 있었다면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노력이 있었기에 청각 장애 임에도 불구하고 4개 국어를 배워 세계적인 금융회사에서 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스승과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스승은 웃으며 단단한 동아줄로 나와 자신의 다리를 한데 묶고 어깨동무를 한 채 2인 3각으로 달려갈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달리며 멋진 팀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준비하는 제자에게 스승이 보인다
여러분은 ‘세렌디피티’라는 말 혹시 들어보셨나요? 물론 영화 제목이기도 하고 ‘뜻 밖의 발견이나 발명’을 뜻하는 기분 좋은 단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렌디피티는 아무 준비가 없이 갑자기 얻게 되는 우연이나 행운이라기보다는 그 행운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 나타나는 ‘정직한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무슨 얘기냐고요? 세렌디피티의 기원을 알아보면 알 수 있다.

‘세렌디피티’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세렌디피티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은 소설가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호레이스 월풀’이라는 사람이다. ‘세렌딥의 세 왕자’라는 단순한 동화책을 읽은 그는 책 속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여행의 막바지에 일어난 우연한 사건들을 총명함으로 해결했다는 점을 주의 깊게 보고는 인도양의 실론, 즉 스리랑카를 지칭하는 ‘세렌딥’을 어원으로 하여 ‘세렌디피티’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이후 이 ‘세렌디피티’라는 용어는 로버트 머튼을 통해 현대적으로 변형되었다. 일상에서의 노력과 관찰을 통해 기존 이론과 불일치 되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것이 곧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여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도출해낸다는 것이다. 바로 ‘세렌디피티’란 게으른 자가 얻을 수 있는 행운’이 아님을 강조했던 것이다.
스승은 미래의 내 모습이다
스승은 본래 자기 모습을 유지하면서 삶을 소중한 선물로 여기며 열성적으로 살아 갈 뿐이다. 가르침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스승의 외적 모습은 스승이 전하는 어떠한 지식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 준다. 스승은 매일 주어진 삶을 감사하게 여기며 자신감 있게 생활한다. 이 때 활기찬 스승의 모습을 보면서 삶에 대한 열정을 본받게 된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스승은 많은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바람직한 영향을 줄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이라 어렵고, 고든 길이라 힘이 들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의 산을 먼저 오른 사람들의 경험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산행에 이르러 있다. 먼저 올라 메아리를 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바로 앞에서 뒷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옆에도 뒤에도 어느 곳이든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인생의 산을 오르는 방법을 배우고 터득할 수가 있다. 때때로 산행이 어려울 때마다 그들에게 답을 구하고자 물을 수도 있고, 직접 물어 볼 수 없는 대상이라 해도 그를 바라보고 동경하며 따를 수도 있다. 역사에 기록된 성인들의 말씀에서 직접적인 가르침이 아니어도 그 사람의 글과 언행으로써 도움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일찌감치 앞서간 사람들로부터도 가르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도움을 얻고자 하거나 누구를 본받으려는 의지는 인생의 ‘스승’을 만들게 한다. 앞서 걷고 정상에 오른 사람으로부터 ‘꼭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일을 찾을 수도 있고, 실패한 경험으로부터는 ‘조심해야 할 일’들을 엿 볼 수 있다. 처음 시작을 하는 사람을 보고는 ‘초심’을 되새길 수가 있고, 황혼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먼 미래를 ‘대비’ 할 수 있다. 힘을 얻고자 하고, 도움을 얻고자 생각한다면 존경하는 인물이나 또는 선배, 친구들을 가리지 말고 찾아가 질문하여 묻기를 서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등산을 할 때 한걸음에 정상에 등극하는 일은 없다는 걸 알기에 그 길이 고되고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은 당연하지만, 나만의 꿈이고 목표이기 때문에 모든 걸 감수하고 이겨낼 수가 있다. 산을 오르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 전부가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인데,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마주치며 지나거나 추월하며 앞서면서도 서로에게 격려하며 힘을 실어준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같은 산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공감을 하게 되고, 사람들은 파이팅 을 나누면서 더불어 자신도 힘을 얻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즘 많은 직장인들이 힘들고 아프다고 한다. 때로는 생활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길을 찾기 너무 힘겹다고 한다. 노력해도, 참아도, 기다려도, 절망적이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롭다고 한다. 그럴수록 나에게 맞는 누군가를 찾아가야 한다. 믿을 만한 한 사람에게서라도 희망의 언어를 들어야 한다.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길을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그대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 그대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