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닿을때마다(라고 쓰고 불러만 준다면), 대학생들에게 영문이력서(이후 ‘이력서’) 작성 방법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강 2~3시간 정도 되는 강의 시간동안 단순히 이력서를 작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커리어라는 긴 여정을 시작함에 있어서 각자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 목표는 무엇인지, 자신의 특이점 (USP, Unique Selling Point)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을 이야기 하곤 인터뷰에서 더 효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사소한 팁을 전달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5년 넘게 연락이 오고 있는 것을 보면 학생들 반응은 썩 나쁘지 않은 것인데, 그렇다고 그게 확대되지도 않는 것을 보면 일타강사 같은 게 될 싹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글로벌 기회의 모색에 관해 이런저런 고민과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있는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후배 A의 이력서를 리뷰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해 주고 싶은 말을 덧붙이면서 끝으로 제 이력서를 공유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력서를 잘 써서가 아니라, 이력서는 자기 스스로 가꾸는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전달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유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그 의도를 간파하였는지, 후배는 더 이상 저에게 이력서를 첨삭해 달라는 요청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는 후배 B도 이력서 리뷰를 요청 해 왔습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생소한 용어도 많았고, 실제 무엇이 성취로 강조 되어야 하는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해서 그분의 지난 해 성과평가/역량평가 결과를 좀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 보니, HR에서 만날 설명회도 하고 브로셔도 내보내며 강조해왔던 역량정의와 평가, ‘목표설정은 SMART (Specific, Measurable, Achievable, Realistic, Time-bound) 하게’와 같은 내용은 온데간데 없고 단어 몇 개, 목표라곤 위에서 내려온 숫자 몇 개로 성과평가/역량평가 템플릿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 해에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떠올리고 정리하는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들였고, 그 후에 결국 힘겹게 이력서 한줄을 추가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력서를 자기 스스로 가꾸는 일은 특별히 구직이나 이직을 염두해 두지 않은 분들에게는 불필요한 행위의 하나로 간주될 뿐입니다. 그러나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자신의 고용가능성(Employability)를 계속 업그레이드 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저 묵혀둘 수만도 없습니다. 언젠가 어느 아티클에서 HR을 두고, ‘구두수선공의 신발없는 아이(Cobbler’s shoeless child)’비유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남들의 경력 개발에 여념없는 HR, 과연 우리 자신의 이력관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요?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경력관리의 확고한 프레임을 쥐고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는 쪽 보다는 그렇지 않은 쪽이 훨씬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해서 오늘은 효과적인 이력서를 위해서 생각해볼만한 포인트를 몇 가지 제안해보려 합니다.
역량(Competency)부터 시작하고 So What 에 대답하기
잘 아시는 것과 같이 모든 직무에는 직무의 수행에 필요로 하는 요구 역량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게 지식, 경험, 자격 또는 시험성적과 같이 발현되는 형태가 다를지언정 결국 그 속살을 들여다 보면 어떤 역량(Competency)에 대한 요구가 그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령 HR을 예로 든다면, 대인관계 역량(Relationship Management, Interpersonal Skill) 이나 커뮤니케이션 역량과 같은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력서에는 이런 요구 역량이 어떻게 발현 축적 되어 왔으며 그 수준이 어느정도인지를 짐작 가능하도록 작성 하는 게 중요합니다. 짧은 문장으로 함축하기 대단히 어려울 수 있지만 (그래서 시간을 들여 가꾸는 것이라고 재차강조), 가능하다면 면접에서 누군가 그 경험이나 역량에 대해서 질문한다면 자연스럽게 STAR(Situation-Task-Action-Result) 기법으로 답변할 것을 염두하고 요약해야 합니다. 수 많은 이력서를 들여다 보고 리뷰 첨삭해 온 제 개인적 경험에 비춰보면 많은 이력서에서 So What? 그래서 뭐 어쩌라고가 빠져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요약하면 “이런 역량을 바탕으로 저런 업무를 해서 고런 결과를 낳았어’가 완성된다면 더 높은 어필포인트가 생기는 것입니다.
특이점(USP)을 채굴하여 가치극대화하기(Valorization)
옛말 틀린게 하나 없다고, 그리스적 시대부터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고 그렇게 이야기 하고 들어 왔건만, 우리는 여전히 자기자신에 잘 알지 못합니다. 더구나 ‘조용히 흐르는 물이 깊다’고 여기는 동양적 사상의 분위기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신을 어필하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지기만 하고요. 대학 강의에서 저는 종종 구직과 이직활동을 두고, ‘슬프긴 하지만 이커머스 상품 리스트에 우리 자신을 올리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비유를 하곤 합니다. 고만고만한 구직자들 사이에서 내가 선택되어야 할 이유를 어필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요. 실제로 리쿠르터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력서를 선택하는 행위의 본질에 있어서 온라인 커머스 사이트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공감 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이력서 하나를 작성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강점과 어필포인트는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가치극대화 상태로 보여지게 하는지를 고민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가격, 리뷰평점, 이미지, 빠른/무료배송 등 여러 어필포인트로 고만고만한 대체재들 사이에 선택을 기다리는 상품들과 우리가 다른점이 있다면 각자의 재능과 강점이 무궁무진의 다양성을 가졌다는 점과 더불어 그것이 더 개발될 여지가 있다는 것 아닐까 싶네요. 저희 회사의 채용 모토 중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자리에서 유산을 남길 사람을 채용한다 We recruit people who will leave their legacy on their job’ 이력서를 가꾸는 일이란 어쩌면 그 내용에 있어서는 현재 업무/포스트에서 어떤 의미있는 유산을 남겼는지에 대한 자기기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도 대신해 주지는 않으니까요. 결국 그 자기기록이 얼마나 성실히 축적되었는가로 우리는 언젠가 평가 받을 것입니다.
벤치마킹과 리뷰요청하기
요즘은 링크드인에서 자기와 같은 분야에 있는 다른 분들의 이력을 쉽게 열람할 수 있습니다. 채용공고에 올라온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 만 보아도 이력서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재료를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벤치마킹을 하다보면 물론 가끔 초라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그것이 또 새로운 하나의 목표이자 이정표가 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인사 업무 분야의 JD를 수십 개 가지고 있고, 인사 업무 외의 JD 도 꼼꼼히 읽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다른 직무 분야에서 HR에 의미있는 시사점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자기 객관화’입니다. 구직과 이직시장은 정보불균형의 끝판왕입니다. Job Planet, Glassdoor, Blind 같은 정보소스가 생긴게 요즈음의 일이고 이마저도 실제 근무하였거나 떠난 직원들의 정보가 보여있을뿐, 어떤 기준에 의해서 채용과 평가의 과정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정보나 탈락의 이유를 설명해주거나 구직자에게 직접적인 피드백을 제공해주는 경우는 여전히 드문 실정입니다. (가족끼리 그런거 하는 거 아닙니다라는 팁을 먼저 걸고) 다른 사람 눈에 보기에도 좋은지, 타인에게 쉽게 읽히고 이해되는지, 궁금한 점은 없는지…만 이야기 해봐도 이직과 구직의 확률을 상당히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지난달 포스팅에 리뷰와 피드백을 요청하였더니, 실제로 애정을 가지고 제 글을 지켜봐 주시는 몇몇 분들의 리뷰가 있었습니다. 그 리뷰에 충실한 글을 써 보고자 스스로 내건 ‘인살롱백반’의 초기 취지와 전혀 무관한 이력서 작성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사실, 이력서 잘 써서 이직해서 지갑 두둑해지면 먹거리는 자연 해결 되겠죠 (라는 억지). 이력서 열심히 가꾸고 잘 쓰는 일은 제 개인적 경험으로는 투자대비효용이 좋은 일 중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달에 국수를 소재로 잔치 벌이는 내용을 쓸까 했습니다. 승진/발령 소식이 있었거든요. 아마 이후 어느시점부터는 중국 상해의 North Asia Regional Office 에서 글을 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내에서 이 글로벌 기회를 얻는데도 부단한 이력서 리뷰와 업데이트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 뒤에 무엇을 남겼는지’ 그리고 ‘왜 한국사람이 굳이 중국까지 가서 해당 업무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답이 미리 구해져 있었거든요. 오늘 이 글을 읽은 인살롱의 여러분들의 이력서를 한번쯤 열어 리뷰해 보신다면 글쓴이의 목적이 달성되었다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