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언론사의 조직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언론사는 어떤 조직 문화를 갖고 있을까. 나는 경영전문대학원(MBA)을 다니면서 일반인들이 언론사의 조직 문화에 대해 굉장히 리버럴(Liberal)하고 자유분방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내가 지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느끼고 경험한 조직 문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언론사의 조직 문화와 분위기는 매우 엄격하고 경직돼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문화가 ‘기수 문화’다. 내가 어느 기수냐에 따라 사람들이 나를 보는 이미지가 결정된다. 나를 개인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특정 기수의 한 명인 OO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기수는 내가 회사를 떠날 때까지 따라붙는 꼬리표다. 처음 언론사에 입사하면 회사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동기들끼리 반말을 하라고 가르친다. 당연히 먼저 입사한 선배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후배 기자들에게 반말을 한다. 예를 들어 “OO씨, OO 좀 해줘”가 아니라 “OO야, OO 좀 해줘” 이런 식으로 하대를 한다. 완벽한 군대 문화다. 가끔 직장인 익명커뮤니티 ‘블라인드’ 앱을 들여다보면 경직적인 언론사의 조직 문화에 비명을 지르는 기자들이 상당히 많다. ‘요새 일반 기업들도 대부분 OO님자를 붙이면서 서로를 존중해 주던데 언론사 문화는 대체 왜 이런 거야?’라고 토로하는 젊은 기자들이 많다.
언론사는 승진도 동기들끼리 하는 게 대부분이다. 기자들의 승진 단계는 그리 많지 않다. 13~15년차 때 평기자에서 부데스크격인 차장으로 승진, 이후 20년차를 전후해 부장(데스크)로 승진, 이게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언론 조직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국장으로 승진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또는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동일한 확률을 가질 정도로 희소하기 때문이다. 특히 차장으로 승진할 때는 입사 동기인 같은 기수끼리 승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 많은 언론사가 연봉제로 바꿔가고 있지만, 호봉제를 유지하는 언론사도 일부 남아 있다. 개인의 실적이 아닌 연공 서열에 따라 연봉이 올라가는 경직적인 임금 체계를 아직도 고수하는 언론사가 있는 것이다. 언론사는 인사평가나 핵심성과지표(KPI)에 대한 적용도 유야무야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부끄럽지만 ‘핵심성과지표(KPI)’라는 용어도 대학원 강의를 들으며 처음 알게 됐다.
그렇다면 언론사는 왜 이렇게 일반 기업에서 보면 ‘헉’소리가 나올 정도로 경직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직 문화를 고수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기자들의 핵심 업무인 ‘취재’와 ‘기사 쓰기’가 부가가치 창출로 연결되기 힘든 무형(Intangible) 가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문 기자를 예로 들면 기자들은 하루에도 최소 7~8개의 기사를 쏟아낸다. 신문 지면에 들어가는 기사와 곧바로 스마트폰과 PC로 볼 수 있는 인터넷 기사를 포함한 숫자다. 하지만 이 같은 기사를 부가가치로 연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사마다 벨류(Value)가 모두 다르고 이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200명 안팎의 기자들이 쏟아내는 기사의 벨류를 전부 따지고 이를 계량화하고 수치화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 기자마다 단독(특종) 기사를 많이 쓰는 기자, 인터넷 기사를 기가 막히게 쓰는 기자, 기획 발제를 기가 막히게 하는 기자, 취재원과의 관계가 좋은 기자 등 특징이 전부 다르다. 기사를 쓰는 것은 일반 회사에서 계약을 하나 더 따와서 회사 매출을 곧바로 늘리는 것과는 다른 영역임이 분명하다.
물론 현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론사의 경직적인 조직 문화가 당연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많은 언론들이 실리콘벨리의 기업 문화를 최고의 조직 문화로 상정해 놓고 국내 기업들은 왜 이를 배우려고 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여왔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언론사는 남을 비판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남에게 비판적인 잣대를 내부적인 문제(Internal problems)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 하루 쏟아지는 이슈에 매몰되고, 다른 조직과 사람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와중에 내부 조직의 문제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넘어가기 일쑤였다. 언론사가 대외적인 인지도와는 달리 기업 형태로 보면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조직원들의 니즈(Needs)와 원츠(Wants)를 비용(Cost)으로만 인식하는 경우도 문제의 또 다른 원인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언론사는 엄청난 위기를 겪고 있다. 소위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라고 불리던 방송과 신문의 위상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튜브의 태동으로 플랫폼이 격변하면서 기존 플랫폼을 통해 반세기가 넘는 위상을 구가해 오던 언론사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는 상태다. 또 다른 위기는 조직 내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경직된 조직 문화와 미디어 시장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일찌감치 언론계를 떠나는 젊은 기자들 숫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인적자원(HR)에 대한 투자와 관리를 소홀히 한 후폭풍을 그대로 겪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언론사의 조직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열거한 문제는 거의 대부분의 언론사가 겪는 문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사는 유일한 경영 자원인 ‘기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떻게 군대와 같이 경직된 조직 문화를 유연한 조직 문화로 이끌 것인지, 4차 산업혁명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조직만의 ‘비전’은 무엇인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자들의 언론사 엑소더스(Exodus)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인적자원관리(HRM)는 그만큼 중요한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