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영화 ‘암살’의 마지막 장면에서 밀정이었던 염석진(이정재 분)의 마지막 말이다.
공교롭게도 이 대사는 오늘날 조직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서는 안되는 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행이다’, ‘예전에도 그랬다’, ‘다 그렇게 한다’,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등과 같은 변명으로 조직 내에서 행해진 자신의 일탈을 포장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가 드러나면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 한정지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짓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그리 간단하게만 볼 문제가 아니다.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는 그 수준을 막론하고 개인을 넘어 조직 내부 분위기나 요인 등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범사회적으로도 물의를 일으키거나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문제다.
더군다나 영화에서와는 달리 조직에서의 도덕적 해이는 몰라서 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 차원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채용의 문제일까? 그래서 지금보다 더 정교하고 물샐틈없는 채용 프로세스와 방법을 마련하면 해결될까? 채용의 문제가 아니라면 교육의 문제일까? 대대적으로 교육체계나 내용을 개선하면 해결될까? 만일 채용이나 교육 등에서의 문제가 아니라면 혹시 조직문화나 리더십의 문제일까?
쉽사리 특정 짓기 어려울 것이다.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 원인은 채용에서부터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조직의 여러 측면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 원인이 조직 외부에 있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개인적이나 사회적으로 변질된 가치나 목표 등이다.
이와 함께 도덕적 해이는 특정 시점에 우연히 일시적으로 나타난다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조직 내에서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소위 말하는 관행 등과 같은 용어로 포장되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가 드러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는 한 명이 한 번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늘고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이와 관련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지 않도록 여러 제도나 시스템을 마련해 놓고 있다.
미션, 비전, 핵심가치 등과 같은 조직의 철학은 물론,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나 휘슬 블로어(whistle blower) 등과 같은 것도 예가 될 수 있다. 물론 교육도 빠질 수 없다. 직무순환 등과 같은 각종 인사관리 역시 일조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조직 내 제도나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성원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뉴스페이퍼 테스트(newspaper test)는 개인이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는 쉽고 간단한 방법 중 하나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다음날 신문에 나와도 문제가 없는지를 생각해보고 만일 문제가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면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정도의 판단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또한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눈을 보면 보다 효과적이다. 시선을 받거나 느끼는 것만으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무인 상점에 비치된 물건의 가격표 위에 눈(eye)이 그려진 그림이 붙어 있는 경우, 그 전에는 지불하지 않았던 비용 대비 고객들의 지불비용이 300% 증대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입사를 위해 작성했던 자기소개서를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다. 작성된 내용 중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삶과 일에서의 가치나 비전 등을 다시 본다면 굳이 앞서 제시했던 제도나 시스템 혹은 방법 등을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자기 자신은 못 속인다는 말이 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사자성어도 일상에서 종종 듣게 된다. 이견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이와 같은 말들은 스스로가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