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저도 조직 문화를 잘 모릅니다만…

 

 

‘조직 문화’라는 키워드를 제 인생의 중심에 놓고 살고 있습니다. 내세울 만한 조직 문화가 없다며 고민을 하시는 작은 스타텁 대표님부터 제법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볼 것 없는 우리 조직 문화가 문제라고 말하는 대기업 부장님까지, 많은 분들과 다양한 환경을 놓고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그중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바로 ‘조직 문화’인데요. 이제 와서 고백하건 데 제법 오랜 기간을 ‘조직 문화’가 뭔지도 모른 채 조직 문화라는 단어를 달고 살았습니다. ‘아는 척’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저를 한 동안 괴롭혔지요.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해야 하는 고통, 아마도 누구나 한 번은 그런 경험을 해봤을 것 같습니다만, 저처럼 제가 하는 ‘일’에 있어 ‘가짜’라는 느낌은 조금 더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그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도 몰랐습니다. 시간이 제법 지나고 나서야 제가 당시 했던 말이 ‘가짜’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회사 대표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저에게 묻더군요.

 

“도대체 조직 문화라는 게 뭡니까? 실체가 있긴 해요? 다들 나보고 조직 문화가 어째야 된다, 우리 회사는 조직 문화가 별로라 조직 문화부터 손을 대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도대체 그 조직 문화는 뭐냐?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얼굴이나 보자고 하면 아무도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면서 얘기하시더군요.

 

“도대체 그 조직 문화는 어떻게 생긴 겁니까? 저한테 딱 한 줄로 설명 좀 해주세요. 그래야 제가 뭘 해도 하죠.”

 

그 말을 듣고 나서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물론 이런저런 설명을 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저 대표님처럼 조직 문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줄로 말해달라는 요청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 줄짜리 설명글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제가 하는 일에 자신감이 훅 떨어지더군요. 여태 뭔지도 정확히 설명이 안 되는 일을 전문가란 답시고 아는 척을 했으니 말이죠.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그럼 도대체 내가 한 건 뭘까?라는 질문이 생기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가짜 휘발유에 가장 많이 포함된 것이 진짜 휘발유인 것처럼 저 또한 가짜와 진짜가 뒤범벅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지금은 ‘진짜’가 되었구나? 하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그 대답은 나중에 하는 걸로 하고요. 우선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조직 문화, 누구냐 넌?  
정확히 어디를,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 거야? 
그래서 결론이 뭔데?

조직 문화, 누구냐 넌?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도대체 ‘진짜’ 조직 문화는 뭐야? 

 

답을 하려고 보니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진짜’는 둘째 치고, ‘조직 문화’ 자체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려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었죠. 여태 정의는커녕 남들이 말하는 조직 문화를 따라 하고 흉내 내기에 바빴습니다. 흉내를 얼마나 잘 내느냐에 따라 나의 실력을 판단했습니다. 완벽하게 흉내를 낸 것 같아 보이면 흐뭇했고, 조금이라도 선이 비뚤어지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여 다시 더 완벽하게 따라 하려고 했죠. 그래서 당시에 제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OO는 요즘 이렇게 한다더라”였습니다. 잘 나가는 회사의 케이스를 수집하고 우리 회사에 적용할 것을 골라내어 따라 하기 바빴습니다. 그제 서야 제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알게 되었죠. 그래서 부족하지만 나름의 경험과 함께 저명한 교수들의 생각을 꺼내 놓고 고민 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조직 문화는 뭘까?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그렇게 찾은 정의 중 저의 경험에 비추어 가장 공감이 컸던 정의 2 개를 가져왔습니다.

조직 문화란 일정 패턴을 갖는 조직 활동의 기본 가정(또는 전제, 믿음)이다. 이것들은 특정 집단의 내외적 활동 과정에서 발견 또는 개발된 것들이다. – Edgar Schein –
조직 문화란 개인의 개성처럼 다른 조직과는 구별되는 개별 조직 고유의 독특성이다. 이 독특성을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구성 요소는 구성원들의 가치 의식(선호하는 가치, 태도, 신념, 경영 철학, 기업 정신 등)과 행동 방식(행동성 향으로서 업무 수행 방식, 대인 관계 방식, 욕구 표출 방식 등)으로 집약할 수 있다. – 신유근 –

에드가 샤인 교수는 ‘조직 문화’라는 단어와 거의 동의어라고 할 정도로 ‘조직 문화’ 분야 대가입니다. 조직 문화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 분의 정의와 함께 가장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신유근 교수님(서울대학교 경영대학교 명예교수)의 정의입니다. 두 분의 정의를 보면, 눈에 띄는 단어가 몇 개 있습니다. ‘패턴’, ‘독특성’, ‘행동 방식’ 등인데요. 이 단어들에 공통적으로 함의되어 있는 핵심 의미를 뽑아보면 ‘반복 행동’ 정도로 나타낼 수 있을까요? 이를 토대로 아래와 같이 저 나름의 조직 문화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보았습니다.

조직 문화는 한 조직(우리 또는 구성원)의 오랜 시간 쌓아온(학습된) 행동 습관과 그 결과물이다.

위 두 분의 정의와 같진 않지만 대단히 다르진 않습니다(표절은 아니지요?;;). 위 정의를 내리는 데 있어 예전에 읽었던 최진석 교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최진석 교수는 ‘인문人文’을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문학人文學’을 공부해야 한다는 게 그 분의 생각입니다. 저는 그 분이 문文을 ‘무늬’라고 표현한데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인문人文이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면 조직 문화文化 또한 ‘조직이 그리는 무늬’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억지스러운가요? 그래도 나름 의미를 풀어놓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생깁니다. ‘무늬’는 무엇이지? 이 질문은 최진석 교수님께서 친절하게 힌트를 주셨어요.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인간의 모든 동선動線이자 흔적이다.

위의 개념을 조직 문화에 빗대어 보았습니다. 조직 문화는 바로 조직 구성원이 매일 그리고 오랜 기간 만들어 낸 동선(행동 습관)이자 흔적(결과물)이라고. 어떤가요? 그럴듯한가요? 이렇게 나만의 정의를 내리고 나니 속이 뻥 뚫립니다. 대단히 독창적 해석은 아니지만 나만의 ‘해석’을 통해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스스로 재해석 했다는 사실이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실체가 없는 조직 문화를 손에 쥐고 아는 척 하며 불안해했던 날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더군요. 이제 내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그것을 이제 마음껏 가지고 놀면 되겠다는 생각에 신이 났고, 함께 일하는 동료에겐 제가 하는 일에 ‘영혼’을 불어넣었다며 한껏 오버를 했죠.

 

이후 우연히 초두에 말씀드린 그 대표님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표님께 그간 제가 정의한 조직 문화의 개념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대표님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시더군요. 그리곤 얼마 간의 침묵을 깨고 물으셨어요.

 

So What? 행동 습관? 도대체 그 행동 습관은 뭐란 말이에요? 그게 도대체 타운홀 미팅이니, 스낵바니, 주 4.5일 근무니 하는 거랑은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가슴이 턱 막히더군요. 그리고 연이어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걸 고민할 가치가 있긴 한거지? 이런 고민할 시간에 뭐라도 하나 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비겁한 합리화를 위한 눈속임용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몇 초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위의 질문을 붙들고 다시 고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행동 습관과 그 결과물… 그게 기업 장면에서 정확히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 이어 계속 연재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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