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한 삶의 변화는 회사 뿐 아니라 가정에도 찾아왔습니다. 우선 재택근무, 개학연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상황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블루’(우울감)에 이어 ‘코로나 레드’(분노), 그리고 ‘코로나 블랙’(좌절감)까지 생겨날 정도인데, 작년 10월 오라클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런 부정적 스트레스 상황을 겪은 직장인이 전 세계적으로 78%에 달하고 그중에서도 한국은 상위권인 84%에 달했습니다. 아무래도 사회적 연결관계를 중시하는 우리만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 보입니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가족관계의 변화
집에서 24시간을 보내다보니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이전에 불거지지 않았던 것이 도드라지게 됩니다. BBC는 코로나가 ‘부부의 관계를 살펴보는 데 있어 돋보기 같은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부부 모두 개인적인 시간이 줄어들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더 가까워지거나, 혹은 멀어지게 되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경제나 분배 문제 뿐만 아니라 부부관계에도 양극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웃픈 현실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편의 가사노동 참여가 적고 육아의 부담을 여성의 몫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보니 부부가 가까워지기 보다는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가 더 많아 스트레스가 높다고 합니다. 실제로 국회미래연구원에서 발표한 코로나 기간동안 가족관계의 변화를 보면, 서울에 거주하는 가족의 25%가 코로나이후 가족관계가 악화되었다고 답했습니다. 1/4이면 적지 않은 비중입니다
그에 따라 이혼도 많아지겠다 싶지만 실제로 이혼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이 늘지 않았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동향’에 따르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6월 이혼 건수는 8776건으로 전년(8680건)보다 1.1%(96건) 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이혼’(Covidivorce)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수준이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최근 급격히 상승한 부동산 자산가치와 전세난으로 인해 현실적인 판단이 더해지거나, 단순 성격차이를 이혼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관련 법률의 영향도 있어 보입니다. 우리는 협의이혼이 아니라면 배우자 일방이 부정한 행위를 해야 이혼을 인정하는 배우자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습니다. 같이 오래 있어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이혼을 할 수는 없습니다. 허나 단지 이혼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집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불편한 패러다임 아래에서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숙제와도 같습니다.
#증폭된 고통. 맞벌이는 육아 전쟁중
그렇다면 맞벌이의 가장 큰 고민인 육아는 어떠했을까요? 코로나로 인해 일터 뿐만 아니라 자녀의 보육을 책임지던 어린이집, 유치원, 그리고 학원들까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첫 번째 웨이브가 한창이던 지난 3월, 인크루트에서는 직장인 826명을 대상으로 육아공백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직장인 10명중 7명이 육아공백을 경험했다고 했으며, 그중에서 유아(4~7세)자녀를 둔 맞벌이 직장인의 경우 90.4%가 해당되어 코로나로 인한 육아전쟁의 한가운데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육아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친정이나 시부모님 등의 가족의 도움을 가장 먼저 찾았고, 이마저 여의치 않은 경우는 위험을 무릅쓰고 ‘비상보육’이라는 제도를 이용해서 어린이집을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체온이 37.5도가 넘게 되면 즉시 하원조치 해야 했고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연차나 반차를 쓰고 아이를 데려가야 했습니다. 유아는 원래 체온이 높은 편입니다. 언제라도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올까봐 항상 불안한 마음입니다. 일이 손에 잡힐리가요.
#구성원의 안녕을 위한 조건
Harvard Medical School에서 발표한 에 따르면 직원 업무생산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질병은 우울증(우울증>비만>관절염>허리ㆍ목통증 順)입니다. 구성원의 스트레스, 우울감 등의 정신적 건강상태는 효과적인 경영을 위해서도 좌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당장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오면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누구나 겪어본 일상이니까요. 구성원의 정신건강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액션이 필요합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 역시 구성원의 정신건강을 원격근무가 원활히 정착되기 위한 4가지 조건(사회적 연결성, 신체건강, 업무툴) 중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업이 구성원의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인지하긴 했지만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개선할 것인가일 겁니다. 즉,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시스템과 혜택을 마련해야 하는가 이죠.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비밀상담 서비스의 제공입니다. 가족마다 각기 다른 문제와 상황을 일률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솔루션은 없습니다.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전문가로부터 솔루션을 받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 이는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로 알려져 있으며, 제가 속한 조직에서도 이용중입니다. 이용해 본 직원 중에 자발적으로(회사에서는 누가 상담을 받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피드백을 줄 때가 있는데 긍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감사하다는 표현도 적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여가시간을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의 제공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혼자에게는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DIY클래스, 미혼직원에게는 개인의 취미를 지원하거나 챌린지를 응원하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익숙치 않은 원격상황, 격리상황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기존 휴식 용도로만 써왔던 집안 공간을 다른 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맞벌이 육아에 대한 지원입니다. 인적자원 운용의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일을 잘하는 나이는 30대 중반~40대 중반입니다. 일에 대해 좀 알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며 네트워크도 형성된 시기이니까요. 헌데 이 시기의 직장인들은 자녀가 미취학아동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인재가 중요한 4차산업 관련기업에서는 어린이집을 짓고 육아비 지원제도를 도입하는 등 경쟁적으로 일하기 좋은 기업을 만들어 우수인재를 영입하고 있습니다. 좋은 인재의 영입은 기업에게 생존이 달린 문제이니까요.
여기서 저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출산과 육아는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영역입니다. 정부에서는 아이키우기 좋은 환경을 선제적으로 만들어가는 기업에게 세제혜택이나 비용지원 등의 혜택을 보다 파격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가는 기업에게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혜택을 부여하고, 뒤따르는 기업을 독려하는 제도를 수립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난 수년간 합계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매년 수십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소용이 없이 결국 OECD 최저 출산율(0.84명)을 기록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적어도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는 정부 독자적으로 움직일 것이 아니라 기업과 보조를 맞추기를 바랍니다. 30~40대는 미래가 불안해서 일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잘크는 나라가 아니라 맞벌이가 육아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실효적일 것입니다.
사회는 가정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지만 가정은 사회가 존재해야 하는 근원적 이유입니다. 코로나 상황은 이미 임시방편단계를 넘어섰고 넥스트 노멀을 찾아가고 있지만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기업의 케어프로그램과 함께 구성원 스스로도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켜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부간에 자칫 불화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가사노동, 육아는 서로가 적절히 배분해야 할 것이며, 미혼직원의 경우 산책, 명상 등의 좋은 습관을 선택해 시간을 미리 정해놓고 지켜나가는 등의 관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이 출산과 육아에 있어서는 기업과 함께 보조를 맞추는 정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라건대 개인, 기업, 정부 모두가 현명하게 소중한 것을 지켜나가는 시기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