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전에 해야할 것들 [스타트업 밑바닥 HR ①]

아무것도 없는 맨땅의 스타트업에서 갑자기 인사 업무를 맡게 되었다면? 누구라도 난감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정통 HRer가 아닌 ‘사짜’라서 더더욱 당혹스러웠다. 처음에는 직무대리 형태로 새로운 인사팀장님이 오시기 전까지 초반에 잠깐 겸하는 정도로 생각했으나, 조직의 상황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HR리더가 제대로 합류하시는 데 까지는 대략 9~10개월 정도가 걸렸고, 기업 브랜딩과 내부 소통도 리드하다보니 생각보다 더 깊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인사 업무에 관여하게 됐다.

그 사이 우리 조직은 12명에서 40명까지 컸다. 그렇게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고민도 많았다. 직접 수행한 일보다 주변의 다른 리더와 팀원들께서 도와주신 사안이 더 많지만, 함께 고생했던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 해봤다. 아무래도 초짜의 단순한 기록 수준이다보니 한계가 있어 전문가 레벨의 HRer보다는 나와 비슷하게 인사팀이 없던 작은 조직에서 덜컥 HR을 맡은 분들께 소소하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평소에는 스타트업이란 우선 갈 길을 가다가 수정하는 방식으로 조금 더 실행에 집중해야 한다고 봤다. 어디로 쏠 지 고민하다가 나가보지도 못한 화살보다는 일단 발사하는 타이밍이 중요하고 날아가면서도 궤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존에 해오던 사업개발이나 브랜드 마케팅 직무 역시 비슷한 관점으로 새로운 일들을 진지하지만 재밌고 신속하게 시도해보곤 했다.

다만 HR 업무는 조금 더 조심스러운 시각으로 봤다. 개발이나, 마케팅, 디자인은 상대적으로 ‘빠른 실패’ 전략을 쓸 수 있는 여지가 많지만, 인사는 한 번의 오판이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결정 하나하나가 조직과 구성원에 주는 영향이 지대하고 모두 가장 큰 자원인 사람과 직결되는 일이기에, 이번에는 초반부터 무조건 달려나가기 보다는 방향을 잡는 일에 가장 신경 썼다. 시작부터 어긋나면 멤버들이 신뢰하기 어려울테니까.

그렇게 목적지를 정하기 위해 먼저 우리 조직을 들여다보면서 이유(WHY)를 도출하고 그걸 어떻게(HOW), 그리고 무엇을 해서(WHAT) 개선할 지 살피는 게 순서라고 생각했다. 우선 뷰티 스타트업 디밀은 4년차 팀으로 전 직원이 12명 정도로 생존이 최대의 과제였다. 하지만 현대홈쇼핑과 아모레퍼시픽그룹이라는 거대한 공룡들로부터 1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아 변화가 닥쳤다. 계획으로만 봐도 6개월 사이에 30명~40명은 더 합류할텐데, 아직은 여러 면에서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아 보였다.

수많은 과업 중에 어떤 일부터 해야 할까? 미국의 리더십 컨설팅기업 ‘트리니티 블루’의 대표 트레이 테일러는 저서 <CEO는 단 세 가지 일을 한다>를 통해 경영자가 해야 할 핵심 업무를 ‘CTN’으로 정리했다. 즉, 기업문화 구축(Culture), 인재 확보 및 유지(Talent) 그리고 현금 흐름 등 재정 관리(Number)가 그것이다. 재무는 전담 부서에서 잘 해주실 것이지만, 나머지 영역은 폭풍과 같은 변화가 다가오기 직전인 지금이 코어를 다져둘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 느꼈다.

이에 카테고리를 3개로 나눠 OKR 시스템의 구조처럼 가장 큰 목적 아래 분야를 세분화해 작은 정량/정성 목표를 세우는 방식으로 1차적인 틀을 짰다. ‘믿을 수 있는 회사’라는 지향점을 구성원과 파트너 모두가 체감하는 걸 목적으로 했다. 당연히 문화도 조직의 정체성과 기업 비전 및 현업에서 일하는 방법 등 비즈니스와 한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고, 리크루팅과 시스템 셋업도 각각 하나의 꼭지로 분류했다. 평가/보상이나 교육/개발 등도 너무나 중요한 영역이겠지만, 지금 시점의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했다.

먼저 기업문화 구축에 있어서는 ‘리더와 멤버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정체성’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일방적인 결정보다는 구성원 전원을 대상으로 어떤 조직이면 좋겠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며 방향성과 핵심 가치를 재정립하기로 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심으로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며, 앞으로 합류할 멤버들의 동료상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위해 10가지의 질문 항목을 구성해 리서치를 진행하고, ‘키맨’들은 더욱 긴밀하게 대화를 나눠보기도 했다. 팀원들에게 질문 드렸던 내용들은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꿈꾸는 순서였다. 지금 우리 회사는 어떤 이미지라고 느끼는지, 외부 시선에서는 어떨지, 우리 조직과 가장 비슷하게 느끼는 브랜드, 구성원 입장에서 회사의 강점과 약점, 진정한 경쟁자는 누구일지, 기업이 꼭 가져갔으면 하는 이미지, 반대로 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 반드시 잃지 않았으면 하는 가치 등이였다.

실제로 멤버들의 생각은 굉장히 다채로웠다. 블랙앤화이트나 보라색 같은 색깔에 대한 이미지부터, 잔잔하다가도 격변하는 푸른색 파도 등의 느낌 비유, 실용적이지만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브랜드들의 이름, 개성있고 자유롭지만 무례하지 않으며 각자의 역할을 해낸다는 점에서 레고(Lego)와 비슷하다는 생각, 기존에는 브랜딩과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의견, 단기적이고 이익만 추구하는 기업보다는 동료와 사회 모두에게 기여하는 프로페셔널로서의 지향점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다.

리더십을 비롯한 모든 동료들의 생각을 들었으니 이제 날것의 원재료들을 버무리고 다듬어 우리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요리를 만드는 일이 남았다. 전사를 아우르는 HR활동을 하기 위한 시작점으로 분명한 목적을 세우고 실행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였다. 물론 어떤 점에서는 시작이 절반이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는 시작은 출발점에 선 것에 불과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리더십과 동료들의 전폭적인 도움을 얻어 온전한 맨땅에서 무언가를 고민해볼 수 있었다.

다음 단계로는 이렇게 얻은 신선한 재료를 통해 조직의 미래까지 담은 비전과 핵심 가치, 동료상 등의 레시피 정리 작업과 이를 활용해 인재 채용 프로세스와 초기 레벨의 평가 제도, 일하는 방법과 문화 내재화, 팀워크 구현 등 실제 접시에 내놓을 결과물이 남았다. 당연히 처음부터 최고의 셰프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소한 아무것도 없던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든든한 시작이였다. 물론 아무도 모르는 스타트업으로서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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