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당신이 말하는 목적이 자신을 ‘설득’하는 것임을 눈치채는 순간부터 당신의 말을 불신하기 시작한다.
– 조셉 그레니 외, 『인플루엔서』
만약에 상대방이 무언가를 원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상대방조차 여지껏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어떤 욕구를 자극하여,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을 제공할 수 있다면?
배우는 것에 관심이 1도 없는 학습자가 내가 지금 가르치는 것에 관심을 갖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조금 더 귀담아듣고 싶게 만들 수 있다면?
과연 내 말을 듣고 싶어할까?
Microsoft365(이하 ‘M365’)라고 하는 협업툴을 도입하려는 고객사와 함께 일하던 때의 이야기다. 당시 나는 고객사의 직원들이 이 협업툴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각종 캠페인과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변화관리 전반을 돕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Microsoft 365에 포함된 Teams, Outlook, OneDrive 등 다양한 도구에 대한 기술적인 교육은 Microsoft 에서 인증하는 전문강사를 고용하여 진행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술 교육이 그러하듯, M365 교육 역시 강사가 먼저 시연한 뒤 학습자들이 따라서 실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퍼실리테이션’ 경험이 풍부했던 고객사의 HRD담당자는, 일방적인 교육을 지양하고 배움에 대한 학습자들에 의지와 열정을 끌어낼 수 있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강사가 기술 교육을 진행하는 세션의 앞뒤로 잠시 우리 회사의 컨설턴트가 교육 현장에 등장하여, 이번 변화의 도입 취지와 교육 목적 등을 설명해주길 원했다. 그렇게 시작하면 학습자들이 조금 더 학습 내용을 잘 받아들이고 결과적으로 변화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필수 교육의 특성상, ‘억지로’ 참여하는 학습자가 태반일 텐데, 도대체 내가 무슨 수로 이 사람들로 하여금 ‘배우고 싶다!!!’는 열정을 북돋을 수 있을까? 처음에는 고객사에서 정리해준 내용을 최대한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교육을 여는 식이다.
여러분, 우리 회사가 M365를 도입하려는 이유와 목적을 아시나요?
1번, 클라우드 기반으로 업무를 진행하여 소통과 협업을 촉진
2번, 구성원의 자율적인 업무 환경을 조성하여 최대 잠재력 발휘
어떠세요? M365 잘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드시죠?
그렇게 몇 차례 교육을 진행하던 나는 ‘과연 이게 최선일까’ 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우선 위와 같은 내용을 구구절절 읊는 나 자신부터가 별로 즐겁지 않았는데, 그저 남이 시키는 말(여기선 고객사가 제시한 문장 및 표현)을 앵무새처럼 옮기는 것이 썩 달갑진 않았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아닌 말을 내 입을 통해 내뱉는 것부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장을 바꿔보니…
우리가 누군가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라’는 말은 대부분의 경우 효과적이다. 나는 내가 이 교육을 듣는 사람이라면 과연 어떻게 느낄까? 하는 관점에서 접근해보았다. 그런데 별로 듣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왜였을까? 우선 메시지를 전달하는 나부터 이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이걸 듣는 사람 역시 재미가 없다면, 이 모든 것은 과연 누굴 위한 메시지인걸까? 애초에 상대방에게 ‘우리가 왜 이것을 하려고 하는지’ 논리적으로 납득시킴으로써 과연 그들의 진정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나는 계속해서 의심이 들었다.
잠깐, 여기까지 내용을 읽어본 여러분 안에서는 어떤 느낌이 올라오는가? 혹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아 글을 그만 읽고 싶은가? 아니면 여러분이 그 동안 맡았던 업무들이 떠오르면서 ‘도대체 이 사람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갔을까?’하는 호기심이 이는가?
당신은 무엇에 ‘관심’이 있나요?
그래서 이맘때쯤 나의 가장 큰 관심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어떻게 원하게 할 것인가’였다. 고객사의 전 직원을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M365를 조금 더 활발하게 사용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프로젝트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또 직접 교육의 한 부분을 진행하면서 “어떻게 하면 M365를 배우는 데 학습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은 상대방의 관심을 파악하고 이를 학습, 나아가 변화와 연결짓는 문제로 귀결되었다. 단순히 하나의 협업툴을 도입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 앞에는 그들의 일상을 변화시켜야 할 중대한 임무가 놓여있었다.
‘이야기’라는 비기
관심을 파악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학습,변화 등을 다루는 많은 책들에서 상대방의 관심을 공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야기’를 꼽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과연 실제로도 효과가 있을까? 당장 내가 맡은 교육 현장에서 작게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다. 이번 교육의 대상자는 팀장님들이다. 우선 팀장님들이 관심있어할 만한 것들을 최대한 상상해보았다. 더 나은 팀장이 되고 싶어할까? 더 나은 팀장은 뭘까? 팀원들이 더 잘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걸까? 팀원들의 성장을 촉진하는 걸까? 아니야… 어떤 팀장님은 더 나은 팀장이 되기를 원치 않을 수도 있어. 그저 현재 자리를 고수하길 원할 수도 있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상상을 확장해나갔고, 동시에 내가 실제로 교류했던 수많은 팀장님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관심사를 추측해보았다. 그 중 가장 보편적인 가치를 선정하여, 이러한 가치를 담은 이야기를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만들기로 한 바로 그 순간부터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떤 이야기여야만 하는가?”
급한 대로 ‘스토리텔링’에 관한 책 서너권을 구해 빠르게 읽어보았다. 듣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보였고, ‘아 저거 내 이야기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었다. 더 나은 팀장이 되고자 하는 그들의 욕구와 M365 학습이라는 주제로 연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누구로 할까? 우선 내가 아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과거 기억들을 훑던 중, 약 3년 간 함께했던 팀장님 한 분이 생각났다. 이 분은 60년대생으로 각종 기술과 도구를 습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팀장님이었다. 그러나 회사에서 변화의 바람(DT,ESG 등)이 불 때마다 팀원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하시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장점이 있으신 분이었다. 그래! 이거야! 교육에 참여하신 팀장님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자리에 앉아계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적절한 사례라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에 가까스로 준비한 이야기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의 가슴에 호소하는 것이 가당치 않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선 급하게나마 ‘이야기’를 만들어서 들려주는 데에만 급급했던 나머지, ‘좋은 이야기’가 갖춰야 할 조건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의견을 구하며 교육 회차를 거듭할 수록 이야기를 다듬어갔고, 나중에 이르러서는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매우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와 같은 피드백을 듣는 빈도도 덩달아 많아졌다. 나는 이것을 꽤나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는데, M365라는 도구의 사용 방법을 익히는 것보다 오히려 그것을 쓰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 훨씬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이 변화를 통해 무엇을 원하는가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 구성원의 입장에서 이것을 원하도록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도 어려운 변화의 첫 걸음이지 않을까? 이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다.
“원하게 만들고 싶다면, 이야기를 들려줘라”
추신 : 멀리 갈 것 없이 픽사의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을 보고 나오는 길, 눈이 부어있는 관객의 숫자만 봐도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이 흘린 눈물 안에는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혹은 어떤 사랑을 할지 등에 대한 의지와 에너지가 담겨있었을 것이다.
질문
1) 최근에 기획했거나, 기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그 프로그램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가치를 줄 수 있는가 ?
2) 정말로 그러한 가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실제로 사람들은 어떠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까?
3) 그러한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라는 요소를 도입한다고 가정하자. 어떤 이야기를 써볼 수 있을까?
4) 다시, 그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할 거라고 보는가?
이번 글에서는 주로 나의 경험을 소개하였기에 ‘이야기’ 자체에 대한 정보를 많이 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 책 몇 권을 추천하며 마무리한다.
1) 인플루엔서(조셉 그레니 외) : 제도,문화,방식 등을 바꾸는 방법과 그 사례를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책. ‘이야기’의 힘에 대해 처음 깨닫게해준 책이다.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필요봤으면 좋겠다.
2) How People Learn(닉 섀클턴 존스) : 교육, HRD, 학습을 이야기하는 책. 사람들에게 학습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HRD 담당자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3) 픽사 스토리텔링(매튜 룬) : 이야기의 중요성은 이제 알겠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일까? 이야기 하나만으로 전세계 사람들을 홀리는 픽사. 그곳의 스토리텔러가 이야기의 본질에 대해 쉽게 소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