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조직문화 담당자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교육 담당자로 들어와서 업무 범위가 서서히 넓어지더니 ‘지식관리’ 담당자에서 ‘조직문화’ 담당자로 불리는게 어색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만약 스타트업의 첫 조직문화 담당자가 되었다면 아마 어디서부터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어려울 것이다. 내가 그랬다. ‘조직문화 담당자’ 라는 말 처럼 업무 범위가 넓고 업무 분장이 안돼있는 업무도 드물었다.
조직문화 담당자는 인사 담당자가 조직문화 담당자로 업무가 확장 되거나 아니면 갑작스런 CEO의 의지에 따라 ‘조직문화’직무가 갑자기 생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라 특별한 루틴이 있거나 주어진 업무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할 일이 없었다. 어떤 업무를 내주지도 않았다. 어느 정도였었냐면 정말 일이 없어서 매일 CEO에게 ‘오늘의 생각’이라는 메일을 2주 동안 보낼 정도였다. 스타트업의 조직문화 담당자는 대부분 한 명 뿐이라 누군가와 논의할 사람이 없다. 있다고 해도, 아마 CEO 정도 일텐데 CEO와 매일 대면하는 일은 아무리 멘탈이 좋은 사람이라도 매우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처음 조직문화 담당자가 되었다면 동공지진을 줄이기 위해 내가 처음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어떤 일을 했는지 공유하려고 한다. 다시 돌아간다면 이 업무들을 착착 진행할 듯 싶다. 그때는 일의 순서도, 일의 방향성도 몰랐었다.
맨날 빨개진 얼굴로 동공지진 났던 시절
1. 업의 특성 이해: 게임업의 ‘게’자도 몰랐던 게임회사 조직문화 담당자
업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이 회사가 어떤 제품을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모바일 게임 회사에 입사했는데도 불구하고 내 스마트폰에는 게임이 단 하나도 깔려 있지 않았다. 게임이 만들어지는 방식, IT 용어 등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 클라이언트와 서버의 차이도 몰랐고, 전기 제품은 다 코딩으로 작동된다고 생각하는 IT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무지한 이었다.
업계의 용어를 모르면 구성원들과도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대화가 되더라도 깊이있는 대화를 이어가기는 힘들다. 그 즈음에 게임에 대한 책을 추천 받았다. “위대한 게임의 탄생” 이라는 게임 제작기에 대한 회고 책이었다. 처음 그 책을 읽었을 때에는 단어 하나 하나가 외계어 같아서 책장 하나 넘기는데 한 세월이었다.
모르는 단어를 리스트업 해서 대표 방으로 갔다. 다 읽지도 않았는데 A4용지 앞 뒤로 6장 정도의 단어들이 추려졌다. 대표는 IT 용어에 대해 차근 차근 설명해주었다. 그 때의 그 강의(?)는 내가 게임업을 이해하는데 단단한 기반이 되었다.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도 책을 읽은 후 클라이언트 팀이 어떤 팀인지, 서버 개발팀이 어떤 팀인지, 게임은 어떤 프로세스로 만들어지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조직의 구성과 현재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알기 위해서는 그 업계의 용어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검색도 가능해 지고 애자일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것인지, 전통적인 방식과 차이는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외에도 회사의 사람들과 많이 부딪히고 질문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사람이 지식관리로 들어왔지? 하는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여도 아는 척 하지 않고 모르는 것은 끊임없이 물었다. 이제와 뒤돌아보면 바보같은 질문을 했어도 무시하지 않는 구성원 분들이나 내가 똑같은 것을 물어봐도 쉽게 대답해주는 대표가 있어서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2.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 담당자 정의하기: 인사팀이나 경영지원팀 내에서 업무 분장하기
각 회사마다 조직문화 담당자의 업무는 매우 다르다. 어떤 회사는 조직문화 담당자를 ‘사내 이벤트 담당자’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회사는 비전이나 핵심 가치를 정의하는 좀 더 넓고 깊은 범위의 담당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 어떤 회사는 내부 커뮤니케이션만을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회사는 채용 브랜딩까지 확장해 culture evangelist로 정의하며 내외부 일하는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기대하기도 한다.
여러 회사의 JD를 보아도 회사마다 얼마나 다르게 조직문화 담당자를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를 부르는 네이밍도 다르고 조직문화 담당자의 채용 배경도 모두 다르다. 본인에게도, 구성원에게도 이 직무를 더 명확히 하기 위해 네이밍을 다시 하거나 경영지원팀의 업무를 명확히 구분한 분장표를 공유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특히 경영지원팀 업무에서 인사나 홍보 관련한 업무가 겹칠 수도 있고, 조직문화 담당자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업무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처음 입사하자마자 나에게 주어진 미션은 ‘교육’ 담당자 라는 네이밍을 바꾸는 것이었다. ‘교육’ 이라는 단어가 지식을 일방적인 주입식으로 넣어주려는 역할의 이미지가 강해서 좀 더 상호간의 소통하는 느낌이 드는 업무 네이밍을 바꾸는 것이었다. 여러 후보 중 고민 끝에 ‘지식관리’ 담당자로 불리게 되었고, 지식을 주입하기 보다는 관리(?)하는 사람의 느낌이 좀 더 구성원들이 담당자를 대하기가 편했던 것 같다. ‘지식관리’ 담당자로서 타운홀 미팅이나 리더십 토론 같은 논의의 장을 열어 그 장에서 나온 의견을 정리하는 역할이 좀 더 자연스러웠다. 이후에는 의견 정리에 더해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열고 구성원들에게 제도나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조직문화 담당자’가 점점 더 어울리게 되었다.
이 쯤에 사내 컨퍼런스에서 조직문화 담당자로 일하기 발표도 했었더랬다
(왼)회의 문화 개선 캠페인 / (오)식대 지원 대상 범위에 대한 캠페인
3. OJT 온보딩 커리큘럼 및 팀별 직무 교육 독려하기
입사하자마자 리더 인터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교육 담당자로 들어왔기 때문에 어떤 교육이 필요할지, 그 답변 속에서 리더들은 어떤 점을 개선시키고 싶은지, 지금 일하는 방식은 어떤지를 엿볼 수 있었다.
10명이 채 안되는 소규모 팀에서 40여명 정도 구성원이 생긴 조직이 되면서 문서화 하는 것, 메일 쓰는 것, 제목을 붙이는 것, 메일함을 확인하지 않는 것 등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조직문화 담당자가 되면 불만(?)이 있는 사람들을 잘 이용(?)해야 한다. 비난만 하는 불만은 멀리 해야 되지만….)
이 같은 불만을 접수하고 몇몇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메일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라는 제목으로 메일함 확인하기, 메일 제목 붙이기 등 기존 구성원 교육을 진행했다.
또한 새롭게 도입한 컨플루언스와 슬랙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 교육을 진행했다. 교육 내용은 무언가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그동안에 우리가 쓰고 있는 방식을 잘 정리해서 모든 사람들 앞에 정리해서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처음에 교육을 만들 때에는 어떤 거창한 것 이나, 새로운 것에 대해서 알려주려는 생각보다는 많은 구성원들이 쓰고 있는 방식을 모든 구성원들에게 인지 시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교육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교육들이 쌓이면서 신규입사자 OJT 커리큘럼이 완성되었다. 우리의 OJT는 기존 구성원들도 모두 받았던 교육이었고 그 교육이 하나씩 모여 신규입사자들에게 3일동안 알려줄 수 있을 만큼의 교육 내용이 쌓였다. 이를 통해 신규입사자와 기존구성원간의 간극을 메우고 신규입사자도 회사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들었다.
3일간의 공통 OJT 에 더해 신규입사자의 수습기간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도록 팀 리더를 독려한다. 3개월 동안 신입 분들에게는 루키 프로젝트가, 경력자 분들에게는 베테랑 프로그램이 주어진다.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회사의 업무를 더 잘 알게 되고, 회사도 신규입사자 분의 일하는 방식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수습기간은 서로가 핏을 맞춰보는 기간으로 회사의 조직문화, 일하는 방식을 잘 알려주고, 회사도 입사자와 잘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기간으로 온보딩은 조직문화 담당자에게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한땀 한땀 만들어진 신규입사자 OJT 커리큘럼 2018 버전. 블로그 링크
처음부터 ‘조직문화’ 라는 말에 압도되거나 부담갖지 말자
일단 여기까지 몇 달은 흘러간다. 하나하나의 미션이 진행되면서 조직문화 담당자가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은 모든 문제가 문화로, 그리고 교육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이슈는 제도로서 풀어야 할 것도 있고, 어떤 이슈는 한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다. 잘하기 위한 책임감은 좋지만 처음부터 너무 조직문화 담당자로서의 사명감이나 부담감은 크게 가지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면 너무 금방 지치거나 이게 과연 의미있는 일인가… 하는 회의감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처음부터 비전, 미션, 핵심 가치 등에 대해 정의하려고 하지 말자. 그건 천천히 알아가야 할 문제다.
어떨 때는 이 직무로 뭐가 변할까 싶고 자괴감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사람과 조직은 아주 천천히 변한다. 뒤돌아보면 1년 전 회사의 모습이 다르고, 3년 전 회사의 모습이 다르고, 5년 전의 회사의 모습이 다르다. 조직문화는 아주 천천히 변하긴 변한다.
아직 나도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꼬꼬마이지만 모든 회사에 ‘조직문화 담당자’라는 직무가 있는 것이 당연한 날이 오고 이 직무가 더 많이 고도화되길 기대해 본다.
모든 조직문화 담당자들 우리 파이팅 해요. 같이 도우며 살아요.
처음에 할 일이 없어서 오늘의 생각이라는 메일을 2주동안 보냈다는 부분에서 빵터졌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교육이라는 단어가 지식을 일방적인 주입식으로 넣어주려는 역할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말 정말 공감합니다.
지식관리 담당자라는게 그런의미에서 생겨났군요 ㅎㅎ
교육 담당자보다 조직문화 담당자가 훨씬 구성원들에게 다가가기 좋은 직무명인것 같아요
조직문화라는 어려운 일을 차근차근 풀어가는 과정이 잘 보이네요! 앞으로 더욱 발전될 모습도 기대됩니다:)
그렇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당! 앞으로도, 차근차근 천천히 좌충우돌 후기를 올려보겠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담당자님의 경험에 공감을 얻어 저도 간단히 링크드인에 이 콘텐츠 후기를 올렸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콘텐츠 부탁해요 🙂
오와! 공유까지 해주시다니 넘나 감사합니당!!! 우당탕탕 글 쓴 보람이 있네요.
제 글의 공유와 후기도 잘 읽고 갑니다 🙂
좋은 인사이트를 얻고 갑니다. 제 경험과 비교해가며 많은 공감도 되었습니다. ^^
도움이 많이 되는 내용인것같습니다! 특히 업무 분장 부분에서 무한한 공감이 일어나네요. 저희 회사도 옆과 위에서 바라는 “조직문화 담당”에 대한 차이가 엄청난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왕, 부족한 글에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댓글에 힘이 나네요!
쓰신 글에서 그간의 고군분투가 느껴져요. 다음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그리고 ‘말시키기의 역사’라는 제목이 너무 재밌어요 ㅋㅋ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우왕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너무 뿌듯하네요.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
아직 저희 회사에 조직문화 담당자와 정의를 내리는 분들은 없지만 그 공백에서 틈새시장을 노려 사내 조직문화를 담당해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너무 필요한 아티클이에요! 많이 다뤄주세요!
와우!!! 댓글 너무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너무 필요한 댓글이었습니다. 다음 번에도 열심히 써볼게요!! casio1010님도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잘 정착하시길 응원할게요!!!
저도 HRD를 담당하다가 갑작스레 생긴 기업문화TF에 혼자 소속되어 고군분투 하다가 현재 너무 회의감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극복해야겠지만요ㅎㅎ 공감되는 글 감사합니다^^
우와!! 저의 글에 대한 소중한 첫 댓글이라니!!! 감사합니다. ynism도 회의감 극복 잘하시면 좋겠습니다. 조직문화 직무가 정말 멘탈이 많이 털리는(?) 직무인 것 같기도 해요 ㅜㅜ 저의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