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에서 만나 안방에서 헤어지다 – 단 일주일 간의 만남이 남긴 것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마음이 다급했다. 떨리기도 했다. 지하 주자창을 향하는 길이었다. 방금 아파트 소통공간 앱에서 눈길을 끄는 제목을 본 직후였다.

 

“지하 4층 주차장에 고양이 한 마리”

 

라는 제목을 클릭했더니 화면을 채운 사진 한 장! 자동차 아래에 겁먹은 표정의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찍힌 사진이었다. 이어진 네댓 줄의 글.

 

“냥이가 어디로 들어왔을까요? 아직은 어린 거 같아요. 자꾸 울어요. 차도 많고 밖으로 나갈 수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읽자마자 뒷주머니에 쥐포를 쑤셔 넣고 생수 한 병을 들었다. 후다닥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는 바쁜 내 마음을 몰랐다. 느긋하게 하강하면서 몇 차례나 마음을 활짝 열고 주민들을 맞았다.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쩌다 거기까지 내려갔을까? 무사해야 할 텐데…’

 

지하 4층 주차장에 들어서면서 나도 모르게 야옹, 야옹 소리를 내었다. 주차장을 살피면서도 의구심이 머리를 스쳐갔다. ‘이런 소리를 내는 것이 아이를 부르는 데 효과가 있기나 한 걸까?’

 

굉장히 넓은 주차장이다. 아파트 건물과 오피스텔 건물을 합치면 8개 동이나 된다. 만나기가 쉽지 않을지 모른다는 걱정과 달리, 생각보다 빨리 아이를 찾았다. 애앵거리는 소리 덕분이었다. 구슬프게 들리는 소리를 찾아갔더니, 2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고양이에게 사료를 먹여주고 있었다. 아이는 경계를 완전히 풀지 않은 채로 먹기와 울기를 반복했다. 나는 옆으로 가만히 다가섰다. 앉아서 잠시 아이를 지켜보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급하셨을 텐데) 먹거리를 고루 챙겨오셨네요?”

“반려묘 한 마리와 같이 살거든요.”

 

나보다 고양이를 많이 알 거라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생각과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녀가 입양한다면, 걱정도 끝이었다. 나는 곧 스승과 함께 미사를 드리러 갈 참이었다. 그 날은 소천하신 사모님의 10주기 추모 예배가 있는 날이었다. 그녀의 생각을 넌지시 물었다.

 

“어떡해야 할까요? 주차장에서는 나가야 할 텐데. 혹시 데려가실 건가요?”

“제가 그럴 사정은 안 되어서요.”

“그럼 망월천까지 제가 바래다줄까요? 아니면 저희 집이 양평인데 그곳에 옆집과 앞집에서 길냥이들을 돌보거든요. 그곳에 두면 더 나을까요?”

나의 아이디어에 그녀는 보호자를 자처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래주시면 너무 좋죠.”

“어떻게든 이곳에서는 데리고 나가야겠군요. 같이 잡아 주실래요?”

 

둘이서 마음을 합쳐 아이를 잡았다. 생각보다 쉽게 잡혔는데, 가방에 넣다가 아이가 순식간에 달아났다. 다른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서 잔뜩 경계했다. 그녀의 노련한 유혹 덕분에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힘이 셌다. “아파트 앱에 소식 올려주세요. 저도 알아볼게요.” 아마도 입양자를 알아봐 준다는 얘기였으리라. 그녀는 인사하면서 들고 내려온 습식 간식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열었더니 순식간에 녀석이 나를 피해 구석으로 달아났다. 화장실 선반 위로 도망간 녀석에게 습식 간식을 내밀었더니 순순히 받아먹는다. 오랫동안 굶었나 보다. 주차장에서도 이미 100g은 될 법한 사료를 먹었지만, 집에서도 잔뜩 긴장한 표정을 하면서도 간식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미사에 늦진 않겟지만, 얼른 출발해야 했다.

 

아이를 어떡해야 할까? 집에 둘 수도 없어서 일단 데리고 나왔다. 아이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며칠 동안 보호해 줄 사람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지인 한 명이 승낙했다. 미사를 마치자마자 데리고 가기로 했다. “동네 수퍼나 편의점에서 깨끗한 박스 하나만 구해다 주면 고맙겠어요.” 염치없는 당부를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도 추모 예배는 길지 않았다. 미사를 마치고 차에 타서야 잠깐의 짬이 생겼다. 아파트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지하주차장에 홀로 있게 할 순 없어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함께 계셨던 분의 조언과 도움이 컸네요. 지인이 임시 보호해 주겠다고 해서 아이를 데리고 이동하는 중입니다. 입양하실 분이 계시면 말씀해 주세요. 잘 보살피고 있다가 고이 데려다 드릴게요.”

 

아이는 그날부터 지인의 집에서 일주일을 지냈다. 날마다 전화하여 소식을 물었고, 지인이 보내준 동영상을 보면서 안부를 확인했다. 정성껏 돌봐 주어 고마웠다. 하루가 다르게 경계를 풀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사흘이 지난 후에는 거실에서 혼자 뒹구는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하면서 ‘얼른 입양자가 나타나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균열이 생기면 언젠가는 무너지는 법이다. 내 마음의 흔들림은 오래 가지도 않았다. 어느새 나는 보호자가 안 나타나길 은근히 바라기 시작했다. 아이와 살아 보자는 마음이 조금씩 커졌다. 머릿속으로 온갖 계획과 구상을 세우고 수정하고 교정했다. 안방을 내어주기로 했다. 입양을 위한 준비물을 구입했다. 숨숨집(고양이집), 스크레쳐, 캣타워, 화장실과 모래, 고양이 삼푸, 이동장을 갖췄다. 고양이의 관점에서 안방 가구를 재배치했다.

 

다행스럽게도(!) 원래의 보호자도 새롭게 입양할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제는 안방을 싸악 정리했다. 가구를 덜어내고 녀석이 숨을 만한 공간의 먼지를 훔쳐냈다. 아이의 배변 공간이 될 안방 화장실도 깨끗이 청소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아이를 잘 돌봐 준 지인의 집에 들러서 아이와 서너 시간 동안 얼굴을 익혔다.

 

지인의 집을 떠날 무렵에는 아이의 경계심이 많이 풀려서 내가 건네는 간식을 받아먹고 머리를 쓰다듬어도 될 정도로는 친해졌다. 물론 나는 한 번만, 그거도 잠깐 쓰다듬는 것으로 그쳤다. 사실은 친해진 게 아니라 나의 손길을 가까스로 참아주었던 것일 테니까. 무서움이 사라질 정도가 된 관계가 됐든, 마지못해 내게 머리 만지기를 허락했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의 목적은 애정의 교감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이동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지하주차장에서 구조된 지 8일째가 되는 오늘, 우리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해서는 이동장 안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가만히 두었다. 이동할 때 덮어두었던 담요만 치웠다. 이동을 위해 떠나기 전에는 사료를 주지 않았었다. 배가 고플까 싶기도 하고, 먹으면 긴장이 달래지려나 하는 마음에 간식을 입에 갖다 대었다. 이것은 실수였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에게는 새로운 장소에 가면 간식보다 마음의 안정이 먼저였을 것이다. 온종일 시간을 주라는 조언이 떠올라 안방을 나왔다. 그 조언은 곧 고양이를 홀로 내버려 두라는 말이었으니.

 

잠시 후에 방으로 들어가 보니, 아이는 이동장에서 나와 제습기 뒤에 숨어 있었다. 벌써 집에서 나왔네? 몇 시간이 지나면 숨숨집에도 들어가고 캣타워에도 오르겠지? 이런 기대감이 들었다. 겨울치고는 포근한 날씨였고 몸을 움직인 터라 창문을 열었다. 방충망이 있는 창문이라 생각했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앞으로 고양이가 받을 햇살을 생각해 늘 열던 오른쪽 대신 왼쪽 창문을 이용하자며 방충망을 반대편으로 밀어두었음을 순간적으로 잊었다.

 

사실 방충망을 열어 둔 것만으로는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캣타워든 숨숨집으로 들어가서 어둡게 있기를 바랐다. 가만히 잘 숨어 있던 그 장소야말로 녀석의 선택인데,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고 말았다. 바퀴가 달린 제습기를 슬쩍 당겼더니 놀란 아이가 달아나면서 창문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방충방에 손상이 가면 어쩌나 걱정했지, 유유히 달아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이는 마당에 무사히 안착했으리라. 걷는 데에 지장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낯선 공간에서 탈출해서 안심한 것인지 녀석은 유유히 멀어졌다. 거실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와야 하는 나의 동선으로는 자신을 쫓아올 수 없음을 안다는 듯이 전력으로 도망가지도 않았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안방, 거실, 현관, 계단을 거쳐 마당으로 내려갔을 때는 벌써 40~50m는 멀어져 있었다. 나는 재빨리 쫓아갔지만, 녀석은 골목을 돌아나갔다. 찾을 길이 없었다. 이 집을 자기 영역으로 받아들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니 다시 돌아올 확률도 낮아 보였다. 녀석을 찾으며 간간이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까미야! 이름 지은지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았으니 자기 이름을 알 리가 없었다. 까미야, 까미야! 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곳까지 이르렀을지도 모르지만, 내겐 그밖에는 부를 이름이 없었다. 한 시간 넘게 마음이 헤매었다. 집에 빈손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밤이 됐다. 녀석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에라도, 아니 내일 아침에라도 녀석이 현관문 앞에서 울어주길 바라지만, 이것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염원이다. 집 안을 이곳저곳 서성였다. 안방에 덩그러니 놓인 캣 타워와 숨숨집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로 덩그러니 놓인 물건들이 쓸쓸해 보였다. 한 수의사가 추천하여 구입해 둔 책들도 아직 책장에 꽂히지 않은 채로 주방 한구석에 놓여 있다. 두어 시간이 지났다. 무엇에라도 집중하고 싶었다. 눈앞의 현실을 잠시라도 잊게.

 

『묘한 철학』이라는 책을 손에 들었다. “고양이의 그루밍은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닦고 정갈히 합니다.” 이런 모습을 기대했었다. 꾹꾹이와 골골송도 듣고 싶었다. 마음 한편에는 더 커다란 욕심도 있었다. 화장실을 청소하고 먹이를 챙겨주어야 하는 부담감을 체험하고 싶었다.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을,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반려견을 통해 절절히 배웠다.

 

어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문제는 분명했다. 내가 미숙했다.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못했다. 첫날에는 이름을 부르며 먹이를 주는 것이 초보 입양자의 대표적 실수라는 동영상을 보았으면서도 마음이 앞서고 말았다. 밤이 깊어져 간다. 어느새 창밖에는 눈이 내렸다. 벌써 테라스에 눈이 쌓였다. 나의 기대와 욕심 그리고 후회를 달래는 것은 오직 하나다. 지하주차장보다는 이곳 길 위에서의 묘생이 낫기를! 마음을 편케 하려는 기만은 원치 않는다. 나의 바람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으면 좋겠다. 창밖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까미야, 미안해. 눈이 많이 내린다는데 잠자리를 구했는지 모르겠네. 사람 보호자가 필요하다면 최고의 집사를 조우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고 길 위의 삶이 더 익숙해졌던 너라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아무런 사고도 당하지 말거라. 그리하여 길냥이들의 평균 수명보다 다섯 배는 더 살아서 좋은 집의 집냥이처럼 오래오래 건강히 살렴.

 

새식구를 위한 정돈을 하다가 멈추어서 안방을 제외한 집안이 엉망인데,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시나브로 유기묘 분양 사이트를 찾아 회원가입을 마치고 입양 정보를 얻는 월간 회원권을 결재했다. 아픈 아이도 많았고 간간이 미묘도 보였다. 파양해야 하는 사연도 다양했다. 나는 오직 까미와 비슷한 색깔의 코리안 쇼트 고양이를 찾았다. 교감을 나누기엔 짧디짧은 일주일이었지만, 걱정과 서운함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오늘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잘 모르겠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나는 고양이 입양을 두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2년 전, 나랑 친해진 길고양이 한 마리가 테라스를 통해 거실에 들어와서 버젓이 드러누웠을 때도, 딱 거기까지였지 집안에 고양이를 들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리 됐을까? 고양이도 없는 집에 캣 타워가 있고, 나는 분양 정보를 위해 결재까지 했을까?

 

지하주차장! 그것이 문제였다. 고양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지하주차장도 잘못이 없다. 고양이와 지하주차장, 이 두 단어가 합쳐지니 비로소 사건이 되고 문제가 되었다. 지나칠 수가 없었다. 수년 전, 생애 첫 반려견을 맞아들일 때도 그랬다. 이웃집 주민이기도 한 보호자로부터 애정을 받지 못하는 녀석이 안쓰러워 챙겨주기 시작했더니 어느 날 보호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데려다 키우세요. 저도 너무 커서 부담스럽거든요.” 그렇게 정이 들어 몇 달을 고민하다가 우리 집 식구가 됐다.

 

*

 

어젯밤, 글을 맺지 못했다. 위 문단까지 쓰고서 실내를 서성이고 잠자리를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눈이 소복이 쌓였다. 창밖을 보고 있자니 까미 같은 모습의 고양이가 지나갔다. 까미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현실을 깨달았다. 색깔은 까미랑 매우 비슷했지만, 덩치가 컸다. 이젠 까미도 길냥이고, 이놈들도 길냥이다. 무엇이 다를까? 크게 다를 건 없다. 개체마다의 또렷한 개성이 있긴 하나, 모두 높은 곳을 지향하고 배변 후에는 흙을 덮는 본성을 지난 고양이들이다. 까미와 저 아이들의 차이라면, 어떤 사람과 우연한 기회가 닿아 서로에게 길들여지며 인연이 되는 것뿐이리라. 그 인연은 함께 하는 시간과 서로에게 기울인 애정만큼 깊어질 테고.

 

‘까미가 다시 오긴 힘들지!’ 푸념하면서 창문을 열었다. 문 여는 소리에 놀란 두 녀석은 저만치 달아났고 한 녀석은 달아나다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곁에 있던 먹이를 얼른 던졌다. 마당에 떨어진 물체를 냄새로 확인한 녀석은 잠시 그곳에서 간식을 즐겼다. 나는 녀석과 친해지고자 인기척을 내어 녀석이 나를 볼 때, 간식을 한 움큼 더 던졌다. 녀석의 눈동자가 포물선을 그리는 먹이를 따라갔다. 까미가 보이지 않는 마당엔 이렇게 길냥이들이 숨어서 살고 있다. 까미가 찰나를 머물다 떠났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양평의 풍광이다. 함께 살자는 마음을 안겼던 생명체가 사라져 허전하고, 멍청이 같은 행동으로 다소 무거워진 내 마음이 조금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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