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 담당자는 회사의 제도를 알리고 제대로 안착하게 하는 일을 합니다. 회사의 일이 구성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란 어렵지만 스토리, 즉 콘텐츠의 힘을 빌린다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사옥이 최고의 복지
기업 평판조회 사이트에서 NHN을 검색하면 이런 리뷰가 나옵니다. NHN은 사옥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로비만 보더라도 사옥 이름이 왜 ‘플레이뮤지엄’인지 알 수 있죠. 서촌이나 강남 어디 미술관에서 볼법한 작품이 즐비하고 심지어 ‘누가 놓친 것처럼’ 천장에 붙은 12개의 풍선마저도 의도된 작품입니다.
로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도서관입니다. 개방형으로 자리한 이 도서관에서 구성원은 책을 읽고 책을 빌립니다. ‘북 바이(Book Bye)’ 코너에서는 누군가 기증한 책이나 헌책을 가져갈 수 있죠. 저도 처음 출근하던 날 조금 일찍 도착해 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기업에 책은 오랫동안 조직문화 구축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랑받아왔습니다. 정부에서도 ‘독서경영 우수 직장 인증’이라고해서 독서를 장려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주기도 하죠. 작든 크든 도서관을 운영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도서관이 없더라도 업무에 필요하다면 구입비를 지원해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NHN의 도서관은 책 읽는 조직문화 정착이라는, 도서관 본래의 그 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Life와 Work, 두 가지 주제로 매월 책을 구입해 큐레이션한다. 이 도서관은 책 읽는 문화를 위해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도서관이 들으면 조금 서운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권해정
진하게 일하고, 진하게 쉬어라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습니다. 기업 측면에서는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줄어들 수 있는 업무량과 생산량을 충당할 수 있도록 일하는 시간 만큼은 ‘집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했죠. 그래서 많은 기업이 이 시기에 유연근무제, 코어타임제 등을 도입했습니다. 일하는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하되, 그 시간만큼은 집중에서 일하자는 취지였죠.
NHN도 마찬가지로 이 시기에 월 총 근로시간 내에서 일 근무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제도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이 제도를 알리는 일은 조직문화 담당자의 몫이었죠. 담당자는 이 제도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도서관을 이용했습니다. 도서관에 비치한 책으로 집중해서 일하는 법을 알려주고, 또 도서관의 책으로 업무 외 시간 역시 회사가 지원해준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도서관 이름이 ‘딥 라이브러리(Deep Library)’입니다. ‘진하게 일하고 진하게 쉬라(Deep Work & Deep Rest)’는 의미를 담고 있죠.
새로운 근무제도는 회사에 제대로 안착했습니다. 자율적으로 업무시간을 정하는 제도를 NHN에서는 ‘퍼플타임제’라고 하는데, 이 퍼플타임제는 NHN의 일하는 문화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자리잡았죠. 이 제도를 알리기 위해 시작한 도서관도 도서관 그 자체로 성장했습니다.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중인 구성원을 위해 전자도서관도 문을 열었고요. 근무제도와 도서관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것에서 스토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콘텐츠로 만들어 구성원에게 일과 쉼이라는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문화의 일은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
최근에 다른 회사의 조직문화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팀원을 채용 중인데 우스갯소리로 이벤트 에이전시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면 무조건 뽑고 싶다고요. 뭐 저도 전날 400개의 택배 상자를 만들었던터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습니다.
이벤트를 열고 선물을 준비하고 택배를 싸고 송장을 붙이는 일. 모두 조직문화 담당자의 업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가장 큰 역할은 회사의 제도를 알리고 그 제도가 우리의 지지를 얻어 문화로써 안착하게 하는 일이죠. 이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습니다. 구성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어려운 회사의 일이, 적어도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요.
사옥이 최고의 복지…란 말이 왜 씁쓸할까요 ㅠ
일하는 환경만큼은 최고다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