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은 왜 허먼밀러 의자를 사줬을까?

* 커버사진 출처: 우아한형제들 공식 홈페이지

최근 회사의 복지와 관련해 언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허먼밀러 의자’입니다. 200만 원 안팎의 이 제품은 구글, 애플과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쓰면서 유명해졌고, 국내에서는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IT기업들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4월에는 SK하이닉스가 600억 원을 들여 임직원 3만 명의 의자를 모두 허먼밀러로 교체해주기로 하면서 화제가 됐었죠.

SK하이닉스 통 큰 복지…전 직원 의자 사무용 끝판왕 ‘허먼밀러’로 [파이낸셜뉴스]

제 기억으로 허먼밀러의 최근 유행에 불을 지핀 건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입니다. (이하 배민)

코로나가 한창이던 작년 12월, 배민은 재택근무 중인 임직원들에게 허먼밀러 의자, 전동식 책상, 초고해상도 모니터 중 하나를 선물로 주었는데요. 비록 많은 임직원들이 당근마켓에 중고로 내놓는 바람에 대량의 ‘미개봉 허먼밀러 의자’가 매물로 풀리는 소동이 있었다곤 하지만, 어쨌든 당시 IT업계에서는 “배민 복지가 부럽다”는 얘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배민에는 또 어떤 복지가 더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주 32시간제, 월요일은 오후부터 근무, BGM이 흐르는 사무실, 로봇이 커피를 배달해 주는 최신식 스마트 오피스, 입사 땐 기본 연봉의 20% 샤이닝 보너스, 분 단위로 지급되는 연장수당, 매월 10만 원의 재택근무 지원금, 가족을 포함한 단체 상해보험까지. 정말 좋긴 좋네요. 저도 가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당장 들었습니다.

배민이 제공하는 복지와 근무환경 (출처: 우아한형제들 채용 페이지)
지난 2월에 문을 연 잠실 신사옥 ‘더큰집’ (출처: 위와 동일)
대 이직의 시대라고들 하죠. 실제로 제 주변에도 정말 많아서,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적극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6명은 수시로 채용공고를 살피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딱히 놀랍지도 않습니다.

잡코리아 조사, 직장인 3명 중 1명 ‘현재 이직 준비 중’ [비욘드포스트]

잦은 이직으로 인재영입 경쟁이 심화되면서 복지제도, 조직문화 등의 개선을 통해서 인재를 확보하고 또 붙잡아두려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허먼밀러 의자’ 유행에 일조한 우아한형제들도 당연히 그중 하나겠지요. 그런데 이들이 한 가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은 물론 다니기 좋은 회사이지만, 더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일하기 좋은 회사”다. 여러 제도는 구성원들이 몰입해서 일을 더 신나게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요소들이다. 우아한형제들의 본질적인 진짜 문화는 “일하는 문화”에서 비롯된다.

원티드 아티클 <다니기 좋은 회사보단, 일하기 좋은 회사> 중

배민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좋은 근무환경의 목적이 명확하게 ‘일’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 회사에 ‘다닐 사람’ 말고 같이 ‘일 할 사람’이 조직에 합류하길 바라고 있는 것이죠.

둘의 차이는 뭘까요? 저는 일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따라 구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사전에 찾아보면 이렇게 나오는데요.

일: 어떤 계획과 의도에 따라 이루려고 하는 대상 (네이버 사전)

적용해서 생각해보자면 배민에서 바라는 ‘일하는 사람’이란, 회사가 어떤 대상을 향해 가진 계획과 의도에 공감하고 그것을 함께 이뤄갈 사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제공되는 좋은 여건들을 회사가 이루려는 일을 잘 해낼 목적으로 알맞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겠지요.

반면 ‘다니는 사람’은 회사가 가진 계획과 의도에는 크게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은 회사에서 부여한 직책에 따라 맡겨지는 것일 뿐이고, 눈앞의 역할을 큰 문제없이 완수하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이때의 일은 ‘노동’의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제공하는 양질의 복지와 근무환경이 그들에게는 노동에 대한 보상이자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됩니다.

노동: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네이버 사전)

8년 간의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저는 ‘다니는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맡은 일에 소홀했던 적은 없지만, 그 이유가 회사 일에 담긴 어떤 계획과 의도를 이루기 위함보다는 무탈히 먹고살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앞으로 남은 직장생활은 ‘일하는 사람’으로서 해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일에서 행복을 느끼며 더 잘 먹고 잘 사는 직장인이 되는 길은, 다니는 사람보다는 일하는 사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좀 더 많은 기업들이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높은 수준의 복지와 근무 여건이 단순히 ‘다니기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한 1차원적인 채용 브랜딩으로 비치지 않도록, 조직이 일을 통해 이루려는 가치를 매력적이고 진정성 있게 전하는 회사들이 많아져야만 그것에 관심을 갖고 공감해주는 ‘일하는 사람’도 더 많아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다니기’와 ‘일하기’라는 일상적인 단어를 새삼 구분해 자신들의 일 문화를 강조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참 배민스럽고 매력적이라고 느껴져서 그 의미를 나름 곱씹어 보았습니다. 갈수록 과열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기업들의 복지 경쟁이 일에 대한 진심을 인정받기 위한 건강한 경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일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은 한 직장인으로서 바라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링크: 원티드 아티클 <다니기 좋은 회사보단, 일하기 좋은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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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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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ism
멤버
ynism
2 개월 전

원가분석팀 소속이신데도 정말 와닿는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단순히 다니기 좋은 회사가 아닌 일하기 즐거운 회사, 일하기 좋은 회사의 모습이 갖춰지도록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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