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지침이 완화되면서 회사는 재택근무를 종료하고, 출근을 공지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근무제도를 도입했어요. 집중근무시간인 ‘코어타임’을 폐지하고, 월 근로시간을 채우면 나머지는 쉬는 ‘오프데이’를 신설했죠. 그리고 수요일에서 금요일로 리모트워크의 날을 옮겼습니다.* 출근해 한 공간에서 일하더라도 개인의 근무자율성을 극대화한다는 취지입니다.
* 관련 기사: NHN, 새 근무제도 도입…알아서 일하고, 알아서 쉰다 (조선비즈, 2022.7.12)
NHN에는 ‘NHN이 일하는 법’이라 불리는 일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열정, 협업, 소통, 끈기, 확신, 이 5개의 키워드로 정리되죠. 분명 중요한 가치이지만, 코로나19 이전에 만들어져 지금의 상황에 맞게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 근무제도 도입을 계기로 이 일하는 법을 리뉴얼하기로 했습니다.
기존에 있던 가치를 없애거나 뜻을 조금씩 바꾸고, 자율을 뜻하는 ‘주도(Autonomy)’를 포함했습니다.* 그렇게 열정, 협업, 주도, 끈기, 확신이라는 키워드가 완성됐죠. 이름도 달라졌어요. ‘NHN의 일하는 법’이란 말 대신 ‘플레이 스타일(PLAY STYLE)’이라 부르기라 했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가리키는 특별한 단어인 ‘플레이’를 강조했죠.
* 내가 중심에 서서 일과 쉼을 관리할 때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새로운 근무제도를 압축한 단어입니다.
리뉴얼까지 좋았는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오프데이나 리모트워크 같은 제도는 공지나 시스템으로 금방 익숙해지겠지만, ‘플레이 스타일’ 같은 문화를 알리는 일은 쉽지 않잖아요. 그것도 일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짜잔, 우리의 일하는 문화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 하면 박수는커녕, ‘일을 더 하라는 거냐?! 😠’하는 오해를 부르기 딱 좋죠. 책 <그래서, 인터널 브랜딩>에는 이런 상황을 빗댄 재미있는 비유가 나옵니다. 조직이 문화와 같은 핵심가치를 강조할수록 구성원은 ‘질려버린 음식’ 정도로 생각한다고요.
그래서 자판기를 빌렸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으니, 바로 아홉 번째 창립기념일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회사의 창립기념일은 회사에도, 컬처팀에게도 가장 큰 행사입니다. 한 손에는 ‘창립기념일행사’와 한 손에는 ‘새 일하는 법 알리기’라는 과제를 들고 저글링을 하다가, 창립기념일 행사에서 새로운 문화를 알려보기로 했습니다.
전제는 이 문화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는 문화임을 보여준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자판기를 빌리기로 했습니다.
자판기에서 우리는 물건을 고르고, 물건을 선택하고, 물건을 받는 경험을 합니다. 진열된 물건이 한정적일수록 물건을 고르는 고민도 깊어지죠. 이런 자판기의 속성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창립기념일 행사장의 모습. 사옥을 둘러 자판기를 설치했다.
선물의 의미와 재미를 더해 어떤 아이템이 나오는지 모르도록 포장을 했다. ⓒNHN
먼저 첫 번째 자판기에서 ‘나의 플레이(직무)’가 무엇인지 고르게 했습니다. 경영지원부터 게임개발까지 총 6개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선택에 따라 그 직군을 상징하는 피규어 키링을 드렸어요. 서로 일하는 모습은 다르지만, 하나의 문화로 함께 일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두 번째 자판기에서는 ‘가장 자신 있는 플레이 스타일’을 선택하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선택에 따라 각각 다른 키링이 나왔죠. ‘플레이 스타일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직접 전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선택하게 함으로써 인식하게 했습니다.
이 의도가 닿았는지, 자판기 앞에서 ‘내가 잘 하는 것’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주도’라는 새로운 가치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선택에 따라 다양한 아이템이 나왔기에 동료와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죠. 같은 가치를 고르는 사람들끼리는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했어요.
첫 번째 자판기에서 나온 선물(직군을 상징하는 피규어 키링)과 두 번째 자판기에서 나온 선물(일하는 문화 5가지를 상징하는 앰블럼 키링)을 합치면 나만의 커스텀 선물이 완성된다.
아래의 사진은 나의 키링. 피규어 앞머리가 법무부장관의 스타일을 닮았다. ⓒNHN
그리고 한 켠에는, 동료에게 바라는 플레이 스타일을 투표하는 이벤트도 마련했습니다. 피규어 키링이 담겨 있던 볼을 이용한 건데요. ‘협업’이 1등을 차지했습니다.
기존 ‘일하는 방식’에서 협업은 ‘코퍼레이션(Cooperation)에 가까웠다.
하지만 새롭게 바뀐 ‘플레이 스타일’에서 협업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뜻한다.
업의 경계가 사라진 지금, 코퍼레이션은 기본이고 서로의 전문성과 전문성이 만나 놀라움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았다. ⓒNHN
그 밖의 자판기들
앞에서 NHN의 창립기념일이 큰 행사라고 말했습니다. 이왕 자판기를 불러온 만큼 정말 다양한 자판기를 가져와 배치했습니다. 물건을 뽑는 자판기 말고도, 퀴즈를 풀어 선물을 받는 퀴즈 자판기, 도서관에 배치된 책의 문구가 나오는 ‘책 자판기’, 요즘 유행하는 포토 자판기도 준비했습니다.
퀴즈 자판기를 이용하는 즐거운 모습. 줄 서면서 나무위키로 NHN을 공부(?)하는 분이 있었다!
선물을 못 받는 사람이 없도록 맞출 때까지 퀴즈를 주는 ‘독한 것’이었다. ⓒNHN
담당자(나)가 고생했던 책 자판기. 도서관에 비치된 책의 유명한 구절을 발췌하고 엑셀에 옮겼다.
약 400권 정도로, 관절염은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NHN
인기 많았던 포토 자판기. 세상 유행하는 ‘인싸 포즈’가 다 나와 릴스를 안 봐도 됐다. ⓒNHN
행사는 1일부터 4일까지 진행됐습니다. 8월, 야외에서의 행사에 지치기도 했지만, 뭐 힘을 냈죠! 한 달여가 지난 지금, 가방에 키링을 달고 회사에 오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기분이 좋죠. 이때를 알고, 그때 그리 힘이 났나 봅니다.
규모가 큰 행사에 빌어 새 일하는 문화를 알리는 과제를 해결했지만, 이를 실천으로 이어야 하는 다음 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그 일도 ‘굿 플레이’가 될 수 있도록 저를 응원해봅니다.
9OOD PLAY ⓒNHN
자판기 활용이 기가 막히네요! 재미있는 사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하는 문화를 이렇게 재밌게 알릴 수 있다니! 흥미로운 사례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