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흐름 = 근무유연화
얼마 전 링크드인에서 2022년 Talent trend report를 배포하였다.
한 해 동안 링크드인의 자체 데이터를 기준으로, 채용시장 글로벌 트렌드를 분석하고 제공하는, 이 자료에서 첫 번째 키워드로 내세운 것은 바로 ‘Flexibility(근무유연화)’이다.
링크드인은 ‘근무유연화’를 채용브랜딩 자료로 활용한 사례가 전년대비 무려 343% 가량 상승하였다고 밝혔다.
분명, 근무유연화의 흐름은 코로나 팬데믹의 등장과 함께 가속화된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의 영향이 줄어 들수록, 점차 출근 중심의 근무 제도로 회귀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하였다. 2~3개월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 발생 수가 주춤하던 시기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실리콘 벨리의 다수 기업들에서도, 현 시점을 엔데믹의 시작점으로 판단하고 직원들의 재택근무 철회 및 복귀를 명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복귀 작업이 모두가 뜻한 대로 깔끔하게 진행되는 모양새는 아닌 듯 하다. 이미 근무유연화를 접해본 직원들은 다시금 엄격한 출근 제도와 기존의 근태 제도권 안으로의 복귀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고, 급기야 몇몇 기업들은 재택근무 철회를, 도로 다시 철회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대퇴사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이직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수의 기업이 구인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불경기와 구인난이 병존하는 아이러니한 채용 시장 동향을 보고 있으면, 기업보다는 구직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적어도 구직자들이 Key를 잡고 있는 현 상황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근무유연화’라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탑승해 버린 것은 아닐까 싶다.
근무시간의 개념이 무너지다.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근무시간은 조직관리에 상당히 중요한 요소였다. 오늘날의 근무시간 이슈는 주로 주 52시간 제도와 맞물린 노무적 이슈나, 연장근로수당과 같은 보상 이슈와 관련되는 경우가 많으나, 과거에는 근무시간을 개인 생산성 측면과 근무태도 측면으로 연결하여 파악하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심지어, ‘근태점수’를 항목화 하여 개인의 평가지표에 포함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였다.
하지만 재택근무, 유연근무의 확산과 함께, 기업이 개별 직원의 근무시간을 기술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하였다. 출퇴근 스케쥴링, 온라인 출퇴근 시스템 구축, 메타버스 활용 등 각종 방안 등이 시도 되고는 있으나, 사람의 머릿속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사무실에 없는 직원들의 근무 태도나 집중도를 체크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탁상공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된 이상, 근태를 초월하는 상태에서 기업의 생산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업 나름의 생존 방안이 필요해 보이는데,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은 근태보다는 성과 관리에 집중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사실, 당초에 기업이 희망하던 것은 성과 관리이지, 정확한 근태 관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회사와 직원 간의 근태 관리의 프레임을 성과 관리 측면으로 전환시키는 것이가장 현실 적이자 건설적인 방안이 아닐까 싶다.
근무유연화 시대에 성과 관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
앞으로의 성과 관리는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를 모두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직원들의 성과를 관리하고 평가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어떻게 구축하는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업에서는 다음의 모습들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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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 팀장이 중심이 되는 성과 관리
비대면 근무 중심의 체제에서는 상대적으로 전사 단위의 업무적 유대를 기대하기가 용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수록, 가장 작은 단위의 성과 집단에서부터 집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기업이 팀제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팀 단위의 성과에 집중하고, 팀 안에서의 밀도 있는 유대를 더욱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아마도 팀보다 거리감이 있던 상위 레벨의 그룹, 실, 부서 레벨의 리더와 실무 단의 개개인 직원들 간 거리는 더더욱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팀의 리더인 팀장의 역할이 더욱 강조된다. 조직에서는 이러한 팀장의 역할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성과 관리 프로세스를 팀장 중심으로 재편하고, 그만큼 강한 권한 위임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팀장급 리더들과 성과 관리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를 수시로 형성해야 하고, 팀장들의 성과 관리를 돕기 위한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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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시스템을 구성할 것
HR부서에서는 팀장 중심 성과 관리를 돕기 위한 지원으로, 사내 성과 관리 목적의 소통 플랫폼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사실 리더들의 입장에서는 뜬금없이 하루아침에 성과 관리의 중요성을 피력하며 구성원들과 대화를 시작 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따라서 회사 차원에서 나름의 멍석을 깔아 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예산이 허용된다면 성과 관리 외부 SaaS 플랫폼을 도입하거나, 특별한 예산이 없더라도 잘 구성된 공식적인 스프레드시트, 엑셀 양식 등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 뿐만 아니라, 사내 정기 1on1 가이드를 배포하거나, 비대면 성과 관리 협업 플랫폼을 지원한다 던지, 성과 달성과 관련한 전사적 이벤트(OKR파티 등)를 구성하는 등의 활동을 마련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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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모니터링 체계 마련
회사 입장에서는 구성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 성과 관리가 현장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더욱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점검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성과 관리 툴이나 협업툴이 있는 경우에는 HR부서에서 주기적 Admin 데이터와 운영 피드백들을 분석하고, 전사적인 목표 진척 현황을 점검하여 구성원들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운영현황을 요약하고 특이사항 등을 보고하는 정기 프로세스를 병행하여 진행한다면, 성과 관리 환경을 조기에 안정화 시키는데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점검 시스템을 통하여 조직 차원의 성과 관리 밀도를 높이고, 구성원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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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의 성장을 잊지 않을 것
성과 관리 작동의 기본적인 요건 중 하나는 그 주체인 구성원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구성원으로 하여금 성과 관리 프로세스의 효능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이 보다 빠른 성과 관리의 왕도가 없을 것이다. 닐 도쉬, 린지 맥그리거의 저서,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를 인용하면, 개인 차원의 동기부여를 이끄는 가장 효과적 요인은 ‘일의 즐거움, 의미, 성장’이다. 따라서, 조직에서는 성과 달성과 동시에 직원 개개인이 일의 의미와 성장을 느낄 수 있도록 제도 곳곳에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성장과 관련된 진단 요소나 상호 피드백 절차를 성과 관리 시스템에 녹이는 방법을 추천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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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관리 차원으로 접근 할 것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근무 제도의 변화, 성과 관리의 변화, 이 모든 것이 변화로 느껴진다. 보통 변화관리 단계는 해빙, 변화, 재결빙(Lewin’s Change Model)등과 같은 일정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초기에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모든 활동과 철학에 대한 구성원의 저항과 냉소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은, 변화 과정에서의 당연한 반응으로 인정하고, 회사의 목적과 구성원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이점을 명확하고 지속적으로 홍보함으로써, 오해를 해소하고 수용성을 높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과 많은 소통과 피드백, 그리고 반복적 개선 외에는 특별한 왕도는 없는 듯 하다.
근무유연화는 장기적 관점에서는 기회일 수 있으나, 당장의 시점에서 회사에게는 위기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적어도 우리 대다수는 아직 충분히 연습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도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일부 사업장 안에서는 하루하루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을 수 있다.
기업의 생존 방법에는 여러가지 조건이 있겠으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조건 중 하나는 ‘기업은 곧 성과를 내야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끝이 없을 수 있는 유연한 근무 시스템 안에서도 성과를 관리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구성원 모두에게 생존전략으로서의 의미가 않을까 생각한다.